책 이야기

‘먼 북쪽’을 읽고(마르셀 서루 / 조영학 옮김) -2017.2월

여름 비비추 2018. 8. 24. 10:32

먼 북쪽을 읽고(마르셀 서루 / 조영학 옮김)

 

이 책은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무작정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작가의 이력이 꽤 인상적이라는 것과 꽤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는 작가소개 외에는 어떤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읽어 내려가며 내내 소설의 다음 내용과 그 끝이 궁금했다. 도대체 주인공이 왜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인지 어떤 일이 벌어져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마을에 홀로 남겨진 것인지 궁금해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의 후기에서 의외성이라는 평에 적극 공감하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1. ‘혼자라는 막막함에 대해

 

무인도에 가져갈 것 세 가지를 고른다면? 등등의 질문을 종종 하곤 했던 기억이 남는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지만 나라면 그 중의 하나가 친구이다. 혼자라는 막막함이 그 어떤 것보다 더 두렵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고독이나 외로움과는 절대 차원이 다른 그 어떤 것일 것이라는 것쯤은 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산에 다녔던 적이 있다. 혼자 몇 번에 걸쳐 4~5시간의 산행을 하곤 했지만 대부분은 친구들과 함께였다. 친구가 없을 시에는 산행모임 동아리의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러면서 혼자서 산행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중에 늙어서라도 절대 혼자서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그러느니 차라리 오지 않는 쪽을 선택하겠다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그건 혼자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대한 거부였다. 그러나 갈수록 혼자라는 것에 적응해야함을 느끼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라는 막막함과 더불어 여자라는 절망이 함께 하였을 때가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남자들 틈에서 여자라는 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했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만약에 메이크피스가 아닌 보통의 여자였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러한 상황에 노여지기 전 훨씬 전에 아마도 남자들의 폭력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메이크피스가 혼자 살아남을 수 있음은 남자 같은 여자이기 때문은 아닐는지. 그만큼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세상에 홀로 살아남기에는 적절치 않은지 모른다.

 

영화 그래비타마션이 생각난다. 그 영화들이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는 아마도 혼자살아남아 결국 지구에 귀환하는 인간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비타의 주인공 산드라블록은 혼자 살아남아 지구로의 귀환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때 자살을 시도한다. 희망이란 끈을 놓치고 절망하여 차라리 편안한 죽음을 선택하는 그녀. 그러나 산드라블록이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 동료 매트가 살아 돌아와 그녀에게 그래도 살아남으라고 용기를 준다. 물론 실제가 아닌 환영인 것이다. 아마도 산드라블록의 내재된 삶의 욕구가 환영을 만든 것은 아닐는지. 무엇보다 인간적인 모습(인간적인 상처들 이혼? 딸의 죽음? 등등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동료 매트에게 옆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들이 함께 하고 있다. 그러한 상처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다시금 지구로 돌아온다. 상처들 속으로 말이다.

 

그런 것에 비해 마션의 주인공은 혼자라는 것에 대한 감정적인 표현을 극도로 자제하고 보다 과학적 지식을 무기로 하여 결국 살아남아 동료들 손에 구조된다. 주인공 맷 데이먼은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키운다. 어렵게 수확한 감자를 단번에 잃은 고난을 겪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모하다 못해 허접한 비닐 우주선에 목숨을 맡긴다. 인간적인 면 보다는 과학자로 화성에 홀로 살아남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제목에서 느껴지듯 인간적인 상처와 절망이 있지만 희망을 안고 돌아오는 그래비타(지구중력)가 그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으면 희망이 보인다는 마션(화성인)보다는 더 감동을 주지 않았나 싶다.

 

마찬가지로 메이크피스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극한의 환경을 견디며 홀로 살아남음에 있어서가 아닌 인간적인 배신과 상처를 안고 견디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용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은 그 어떤 곳, 어떤 상황에서든 계속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선 말이다.

2. 문명의 이기와 우리

 

간간히 우리는 우주여행처럼 고도문명이 발달한 세계를 그리는 소설이나 영화를 만나기도 하지만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 영화 또한 적지 않다. ‘먼 북쪽은 암울한 미래를 그리는 소설이다. 이러한 소설이나 영화가 주고자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정말 우리는 이러한 메시지를 외면하고 함께 파멸하는 길을 걸을까? 물론 나는 인간이 그렇게 어리석지만은 않다고 생각되지만 다른 한편 되돌릴 시기와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어 결국은 함께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구의 나이를 1년으로 하여 계산하면 110시 지구 탄생하여 1231일 오후 8시경 인간이 도구를 사용한 기록이 보이며 1231일 오후 1159분 문명의 탄생하였다고 한다. 1231일 그것도 늦은 오후에 태어난 인간이 지구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체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있는 기억들의 가장 먼 곳에는 우리 집에 석유난로가 하나 있었고 방에는 작은 화로가 있었다. 대부분 연탄불에 밥을 해먹었고 밥을 먹기 위해 행주질을 하고 그릇을 놓으면 그릇이 춤을 추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전보대신 전화로 소식이 전해왔고 이후 청색전화이니 백색전화이니 하면서 전화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던 시절도 기억난다. 이후 씨티폰, 핸드폰으로 발전해서 스마트폰이 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변화들을 겪은 세대가 우리가 아닌가 싶다. 끊임없이 그 발전에 맞추어 몸을 싣고 왔지만 요즘 들어서는 헉헉되는 내 모습이 보이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곧 운전사 없는 자동차가 나오고 달나라 구경 갈 때가 멀지 않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누리를 이러한 문명의 이기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다면 어떠할까?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매년 오는 태풍처럼 곳곳에서 자주 일어나면 어떠한 일이 생길까? 지구의 인간이 비공식적으로 80억 명이라고 하는데, 지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일까?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걸까?

 

공공 목장의 비극이나 죄수의 딜레마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물론 다시금 나오는 이론들에 의하면 경험적으로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지를 알게 되며 결국 사회적 협동을 통해 살아남는 흡혈박쥐처럼 공생의 길을 걷는다지만 이러한 호혜적 이타주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니 만큼 급작스런 변화가 생긴다면 과연 이러한 공생이 가능할지가 매우 의심스럽다. 늘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 철이 드는 것처럼 되돌리기 어려울 때가 돼서야 후회하고 반성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3. ‘희망을 지키다

 

책의 서두는 매일 아침 나는 권총 두 자루를 챙겨 이 암울한 도시를 순찰한다.’로 시작된다. 그녀는 보안관이다. 그런데 그녀가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가? 자신의 집? 목숨? 재산? 마지막 장에 이르러 난 답을 찾았다. ‘언젠가 그간 구해낸 책을 세워보았다. 무기고에 쌓아둔 책이 2075, 집안에 있는 책이 177권이었다.’ (315) 난 여기에 더해 그녀가 마지막으로 적어 내려간 일기와도 같은 책 1권 도합 2253권의 책이었다.

 

메이크피스는 한동안 죽어있었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핑이나 비행기가 나타나기 전에는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 나와 이어진 삶이 어딘가에 있고, 세상 어딘가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중략) 기대감도 없었는데? 나는 겨우 내내 어둠 속에 앉아 촛불이 모조리 타버리기를 기다리고 오래전에 떠나버린 삶의 메아리나마 잡으려 애를 쓰고 어둠 속에서 걷고, 총을 청소하고, 마구간에서 안장을 벤 채 웅크리고 살았다.

내 삶은 고통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바림이 눈 위에 적어놓은 길고도 잔인한 농담일뿐(278)

 

그러나 핑을 만나고 비행기를 만나면서 그녀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리고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면서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종말만은 막아달라고 작은 희망과 함께 말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생각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처럼 판도라가 제우스로부터 결혼선물로 받은 보물 상자를 호기심에 못 이겨 열게 되자 증오, 질투, 잔인성, 분노, 굶주림, 가난, 고통, 질병, 노화 등 장차 인간이 겪게 될 온갖 재앙이 쏟아져 나왔다. 판도라가 놀란 나머지 얼른 상자의 문을 닫자 희망이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뒤에 나온 이야기에 따르면 그 단지에는 악이 아니라 신의 축복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인류를 위해 보존될 수도 있었을 신의 축복들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 이야기가 더 신빙성 있지 않나 싶다. 결혼선물이었으니 제우스의 복수심이든 아니든 세상의 온갖 나쁜 것을 선물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결국 인간이 그만 그 많은 신들의 선물인 축복들을 다 날려 보내고 오직 희망만은 건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려운 시련과 인류 종말이라는 재앙 속에서도 신의 축복인 희망을 건졌으니 희망만이 인간이 살아야 할 이유가 되며 지켜야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