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종이약국’을 읽고 -2018.6월

여름 비비추 2018. 8. 24. 10:50

니나 게오르게 장편소설   종이약국을 읽고

탱고를 추듯 삶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사랑의 상처로 20여년을 마음의 문을 닫고 사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화물선을 개조해 서점으로 꾸미고 책을 독특하게 파는 서점 주인이다. 그의 서점은 센강의 명물이다. 서점이름은 종이약국. 이 종이약국의 주인인 페르뒤 씨는 마치 약사처럼 책을 사러오는 사람에게 몇가지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찾아내 적절한 책을 마치 의사의 처방전처럼 권한다.

이 책을 자기 전에 50~200쪽씩 읽으세요마치 우리 몸이 아플 때 아세트아미노펜 500mg1알 드세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마음의 상처를 책(독서)을 통해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이 제머리 못깍는다는 말처럼 정작 자신의 상처는 치유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5년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한통의 편지. 그 편지에는 뻔한 내용의 글이 있으리라 여기고 읽어보지 않은 채 식탁 서랍에 던져두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편지를 읽게 되고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는데....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딱 여기까지이다. 여행을 떠나면서 너무 작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 이야기가 아닌 종이 약국이야기가 계속 전개되기를 기대했는데 종이약국(독서의 치유능력에 관한 이야기와 실제 사례를 통한 이야기 전개 등등)은 사라지고 우연으로 이어지는 작위적인 이야기만 전개되어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집중하지 못했고, 평판처럼 좋은 느낌으로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러나 루크와 페르뒤의 만남부분에서는 눈물이 나오도록 감동스러웠다. 두남자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이기적이긴 하지만 마농의 사랑이 가슴한편 이해되기에 그러한 듯하다.

 

읽으면서 내 아내가 결혼했다는 책이 떠올랐다.

한 여자가 그것도 결혼한 여자가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용감하게 남편에게 다른 남자를 사랑하니 결혼하겠다고 통보한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에 결국 떠나지 못하고 아내의 결혼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두 남자가 만나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 두 남자간의 우정도 생긴다. 이후 아이가 생기고 아내는 아이의 양육을 이유로 함께 살 것을 제안하고 결국 세 명은 동거하게 된다.

 

이 소설의 내용은 현실에서는 켤코 일어나지 않을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 여자가 두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마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니 말이다. 비록 남녀간의 사랑일지라도 각기 다른 모양새의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마농 자신마저 두 남자를 사랑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신의 질병을 벌 받는 것이라 여겼지만 난 마농이 두 남자 루크와 페르뒤 씨를 사랑한 것은 루크의 말처럼 범죄는 아니라고 본다. 그 모든 게 삶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 몰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것에 공감한다. 우리의 삶이 그리 녹녹치 않다. 반복되는 일상과의 사투도 그러하며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아픔은 심신을 지치게 한다. 그럼에도 삶이 의미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일을 기대하는 희망이 있기에 오늘을 부여잡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농의 일기를 읽으며 마농이 참 이기적이라 여겼다. 두 남자를 사랑한단다. 루크는 루크대로 그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루크가 갖지 못한 부분, 어쩌면 페르뒤 씨가 가진 것은 그 것대로 사랑하며 그 두 개를 놓지 못한다. 아니 놓지를 않았다. 마농은 끊임없이 묻는다. 왜 나는 한 남자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많은 대답이 하지만 그 대답들은 삶을 향한 굶주림을 뜻했다고.

생각하지 마, ! 몸으로 느껴!”

탱고의 리듬에 몸을 맡기듯 마농은 삶을 그렇게 살고 사랑했다.

루크는 어쩌면 이기적인 그런 마농의 사랑마저 인정한다. 마치 난 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 시켜 줄 수 없어. 그러니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다른 남자를 만나도 좋아. 난 정말 괜찮아.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그런 너마져도 난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루크는 말미에 난 마농과 결혼 하려고 했을때 이미, 마농에겐 절대 한 남자가 전부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뒤 늦게 찾아온 페르뒤 씨를 향해 연적이어서가 아니라 마농이 기다릴 때 오지 않은 그를 나무라고 있다.

 

페르뒤의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의 상처는 몸에 난 상처처럼 쉽게 아물지 않는다. 나은 듯 보이지만 피곤하면 다시 덧나는 상처처럼 수많은 감정들, 분노와 슬픔, 상실감 또한 질투 후회 등, 그 수많은 감정들을 겪고 나야만 비로소 찾아오는 평안처럼 사랑 역시도 그러한지 모른다.

사랑은 집이다. 모름지기 집 안의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덮어두거나 아껴서는 안된다. 완전히 사랑 속에 거주하면서 그 어떤 방도 어떤 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172)

 

우리는 깨어진 사랑마저 우리 안에 품어야 한다. 부끄러운 과거의 삶 역시도 말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이며 비로소 우리 안에 품을 때 우리를 완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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