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2016.3월)

여름 비비추 2018. 8. 24. 10:04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고

 

누가 이 책을 읽자고 했는지 책의 두께만큼이나 읽어내는데 고독했다.

특히 초반부는 정말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빽빽한 활자도 부담스러웠지만 등장인물들의 익숙하지 않은 이름과 설명위주의 긴 문장들이 자칫 집중하지 않고 읽으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쉼표), ~~~. 로 연결되는 문장이 대부분이다)

결국은 책 초반의 작품해설을 몇 번씩 읽고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유명세에 눌려 연필을 들고 등장인물의 이름을 밑줄그어가며 읽어야만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책을 읽는데 가장 도움을 준건 가계도다. 가계도를 펴놓고 읽어나가니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또렷이 이해되면서 그들이 겪어야했던 삶의 고단함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특히 책의 마지막부분 아루렐리아노가 양피지 원고를 해석하고 결국은 자신과 마콘도가 바람에 날려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을 아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다 읽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이 책을 왜그리 높이 평가되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이런 이해는 분명 가계도의 힘이라 여겨진다.

 

1. 새로운 형식에의 소설

 

굳이 김욱동교수의 작품 해설을 읽지 않더라도 소설이 같는 허구를 넘어선 환상과 공상, 아니 망상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것들이 사실과 혼재되고, 시간의 거슬러 현실과의 구분이 애매모호하게 엮어져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나도 처음에는 뭐 이런 황당한 이야기’ ‘이거 동화야?’ 했던 것들이 차츰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 속에 젖어 들어 등장인물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우리의 고대신화처럼 곰이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되었다거나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과학적 사실을 떠나 우리가 믿는 것처럼 아마도 콜롬비아의 힘든 자연환경이나 그들의 수백 년 걸친 수탈의 역사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그들의 전설이나 설화 또는 믿음이 이러한 소설로 재탄생된 것이 아닐까싶다.

 

더 쉽게 우리는 삶이 힘들 때일수록 더구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 일수록 나름 고립또는 합리화하고 백일몽처럼 적응하는 적응기제(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조화,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독특하고 신비한 세계는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에 걸쳐 그들의 의지와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또는 권력에 순응한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되며 일상에서의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독특한 소설 기법일 수 있다.

 

2. 리얼과 환상을 나름 해석 하며

 

콜롬비아의 역사를 살펴본다. 그리 편 탄한 역사는 아니다. 수백 년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현재의 콜롬비아로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외세의 영향과 수없는 내전을 겪어야 했다. 또 중남미의 대표적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극소수의 부유층이 정치·경제·사회적 주도권을 잡고 있고, 대부분의 국민은 저소득층에 속하여 있는 탓에 아직도 계속되는 정치·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무장투쟁이 전개되고, 마약밀매, 납치, 살인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되며 사회불신붕조가 퍼져있다. 자연 지리적 조건도 만만치 않다. 적도근처에 위치하고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열대우림과 안데스산맥이 곳곳으로 뻣어있어 국민들의 생활이 녹녹치 않다

백년의 고독은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또 인간 내면의 가장 근본 적인, 예를 들어 우리는 나름 나에게 주어지는 현실에 적응하며 때론 갈등하고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려 한다.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때는 고립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갈등과 고통의 불안을 해소하기도 하고 때론 백일몽처럼 환상 속에서 마치 현실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내면의 갈등과 불안을 담고 있다.

 

레베카는 흙이나 벽에서 긁은 석회를 먹고산다. 레베카는 호세 아르카디오가 죽은 다음 마을사람들과 단절하고 다쓸어져가는 집에 은둔하며 몇 십 년을 고독하게 살아가는데 이는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양상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결국 레베카가 그런 은둔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성격을 소유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복선은 아닌지 싶다.

레메디오스의 이름을 물려받은 미녀 레메디오스가 승천하는 것 또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이며 어린아이의 영혼을 가진 레메디오스의 갑작스런 죽음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그들이 종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천사의 나라로 갔다는 나름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또 산타 소비아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습하고 칙칙한 그들의 환경은 바퀴벌레와 흰개미로 형상화하였다. 그러다보니 흰개미들이 어린아이를 삼키는 장면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17명의 아울레리아노. 그들은 이마에 십자 표식이 있다.

3000명의 사람들을 너무나 쉽게 죽음으로 몰아넣는 곳에서, 17명의 죽음은 너무나 쉬워 보인다. 17명의 아이들이 확실한 이유 없이 죽어야 했다면 현실적으로 그것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결국 남들에게 쉽게 눈에 띄는 표식이 있어 살해당했다고 이해하는 수밖에는…….

 

 3. 강인한 어머니 우르슬라의 슬픔

 

우르슬라의 모습은 우리 60~70년대의 할머니를 연상시킨다. 모습도 모습이거니와 우르슬라가 앞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만큼 우리네 할머니가 글을 읽고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을 우리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일상의 생활에서 언제나 비범한 암기와 기억력, 현명함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집안 식구들 누구도 우르슬라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오히려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일들을 새로운 눈으로 이해하는 통찰력을 얻기까지 한다.

비록 그녀가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 비극을 일으키는 시초가 되었어도 그녀는 열심히 살았고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다.

그녀의 강인함은 곧곧에서 나온다. 남편이 찾지 못했던 도시를 우르슬라는 찾아냈고, 남편이 무의미한 연구에 몰두하고 집안을 돌보지 않을 때 우르슬라는 집안을 돌보았다. 아들이 처형을 당하는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으며, 마콘도를 다스리는 손자 아르카디오를 누구도 제압하지 못할 때 우르슬라는 채찍으로 손자를 후려칠 만큼 매섭고 강인했다.

또 가세가 기울어 어려울 때도 금화가 숨겨져 있는 곳은 말하지 않을 만큼 곧은 성품 또한 지녔다. 그러나 거기까지 만이다.

방탕한 생활에 젖어있는 아울렐리아노 세군도를 어쩌지 못했고 성직자로 키우려했던 호세 아르키디오와 레메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자신이 숨긴 금은보화는 호세 아르키디오의 죽음의 단초가 되었고, 근친상간으로 인한 불행을 예견했음에도 이 또한 막지 못했다.

그녀의 슬픔은 미치광이가 되어 밤나무에 묶여져 있는 남편을 향해 하소연하는 장면에 잘 나와 있다. 슬픔마저도 혼자 삼켜야했던 우르슬라의 긴 한숨과 고단함이 전해진다.

 

4.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고독

 

삶의 무게,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이고 사람들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인간은 고독할 수밖에 없고, 고독을 잊으려 사랑에 매달린다. 사랑만이 외로움을, 고독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수 있으니 말이다.

금기시하는 사랑은, 금기시하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유혹을 벗어나기는 힘들기에 부엔디아 남자들은 더욱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독은 사랑에 집착할수록 더 고독해지는 속성이 있다. 오히려 무심하게 사랑을 내려놓을 때 사랑의 힘이 생기고 고독의 끝을 볼 수 있다.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랑에는 강인한 면이 있다. 아우렐리아노 대령의 어린 레메디오스와의 결혼도 그러했고 17명의 아들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그의 기질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아마란타의 피에트로 그리스피에 대한 집착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페트라 코테스의 질긴 인연도 부엔디아 가문의 몰락의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아울렐리아노의 아마란타 우르슬라와의 사랑은 무모했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게 방탕하고 무책임했기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뒤따르게 된다.

레베카가 그러했고 아마란타가 혼자 늙어야했다. 말년의 아울렐리아노 대령도 자신이 자신에게 희생되었으며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다. 아우렐리아노 세군도는 말년에 가서 페트라코테스와의 교감을 이루는 듯 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였다. 그 속에서 페르난다가 불행했고 평생 수녀원에서 생활하게 되는 레메가 있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가계의 중심은 언제나 여자였다. 아마도 어머니라는 이유 때문이 아닐는지...

마콘도의 마을을 이루는 시작으로부터 마콘도가 사라지게 되는 부엔디아 5대에 걸친 역사를 보며 우리나라 대하소설 토지를 연상했다. 토지의 최서희라는 강인한 여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대사를 총체적으로 다루었던 것처럼 백년동안의 고독은 우르슬라를 중심으로 콜롬비아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으로 부엔디아 집안의 삶과 죽음, 부와 권세, 사랑, 욕정의 흥망성쇠를 다루며 인간 삶의 모습들을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를 예견하고 쓰여진 양피지의 글처럼 모든 역사가 정해진 운명처럼 진행된 소설속의 소설이라는 황당하면서도 공허한 마무리와 또 우르슬라의 작고 가볍디 가벼워진 몸뚱이가 짊어져야했을 120년의 삶의 무게가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